보았다, 1987 ; 눈물로 기억되는 그날 보다

차마 볼 수가 없는 영화가 있다. 그리고 눈물로 기억되는 그날이 있다.

몇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지를 못하던 영화다. 거기에는 그날이 그렇게 칼날처럼 버티고 서있다. 

그 시절 나는 그렇게 간절하지 않았다. 너무 열심인 친구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강요하지 않았다. 모두가 암묵적인 동의와 공감을 갖고 있는 시절이었다. 쫓기다가 강의실로 숨어 들은 친구들에게서 마구 풍겨대는 최루탄 가스에 눈물 콧물을 쏟아내더라도 절대 눈총주는 일은 없었으며, 교수님은 그들의 부산함을 절대 탓하지 않고 계속 강의를 이어갔다. 어느 날 문득 학교에서 보이지 않게 된 친구는 유치장, 구치소를 거쳐서 들어가 있는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책상을 탁치는 억하고 죽었다" 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게 말이 되는 일인가? 그리고 또 어느 날, 그렇게 귀한 목숨이 최루탄에 사그라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둔하고 겁많은 인생이었지만 분연히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물로 눈물을 기억하며 일어섰던 날이 있었다.

그 날 그렇게 죽어간 이의 아픔을 나는 감히 짐작조차도 할 수 없었다. 그 날 그렇게 죽어간 이를 가슴에 묻을 수 밖에 없었던 부모님들의 아픔을 나는 감히 상상할수조차도 없었다. 세월이 흘러도 나는 여전히 그 아픔을 재어볼 수도 없겠다.

결국 시작부터 흐르는 눈물은 끝까지 그칠 줄을 몰랐다. 그렇게 엄혹한 세월을 살아왔음을 생각하면서 흐르는 눈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피, 땀, 눈물로 가지게 된 그날들을 의뭉스러운 족속들에게 다시 넘겨주고 속은채 조금 더 나아졌음에 만족하거나 안심하며 살아온 시간이 억울해 흐르는 눈물이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오늘 그 시절 우리에게 꼰대짓을 해대던 이들의 모습을 나 자신에게서 본다. 그렇게 저항하며 싫어했던 기성세대의 모습, 기득권에 취해 변화를 거부하고 놓치기 싫어하는 모습이 닮아있음을 본다. 그래서는 안되는 일 아닌가? 그렇게 죽일 듯이 미워했던 그들의 모습을 닮아서는 안되는 일 아닌가? 변화와 발전을 이루어야하지만, 터무니없는 변절과 궤변을 늘어놓아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나는 오늘 또 어떤 선택을 하며 세상이 바뀌기를 기대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