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오면 살다

다시 4월이 왔다.

해마다 4월이 오면 그렇게...

2019년의 4월은 더욱 극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있다. 3월 새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수학여행 동의서를 들고 왔을 때, 망설여졌다. 반쯤은 농담삼아 "가지말지 그래." 라고 했다. 순한 아들은 "네~~"라고 했지만 진정한 수긍은 아니었다. 고교 시절 수학여행을 안가면 어떤 추억이 남겠는가? 나는 동의서에 서명을 해주었다. 

4월의 제주도 수학여행! 떠오르는 트라우마가 없겠는가?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이라서 다행인건가 싶다가도 그 비행기라고 사고는 없겠는가? 라는 극단적 생각까지 든다.

사고는 언제라도 누구에게 일어날 수 있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사후 대응이 될 것이다. 그런 대응을 어설프게 했던 이전 정부에 극한의 실망을 하게 된 것이다. 과연 새로운 정부는 나아졌는가? 라는 의구심은 이번 강원도 산불 대응에서 사라졌다. 그러면서도 다시 드는 의심은 이런 대응 수준이 지속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람이 바뀌면서 다시 원점으로 퇴행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까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다. 대통령 한 사람 바뀐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야 불과 5년만에 한 번씩 바뀌는 것이지만 실무적인 업무를 하는 사람은 그보다는 훨씬 오래동안 남아 있을 것 아니겠는가?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쪽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모든 긍정적인 변화는 한 순간에 원점회귀인 것이다. 간절히도 이런 긍정적인 변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어느 날 누구라도 험한 일을 당했을 때도 제대로 된 대응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4월이 오면 생기는 이런 불안감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며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자식과 가족을 잃은 부모형제만큼은 아니겠지만 어딘가 여행을 가고, MT를 간다고 나서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귀했던 목숨이 계속 생각날 것이다.

직접적으로 아는 이들은 없지만, 4월에 더 깊은 슬픔에 빠져 있을 그들에게 마음 속의 위로를 전해본다.

더불에 아들의 무사 귀가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