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았다, 눈이 부시게; 삶을 위한 헌사 보다

멜로인줄 알았다. 코믹인줄 알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렇게 치매를 앓다가 떠났다. 예상보다 일찍... 건강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역시 어느 한 순간, 그렇게 세상을 등졌다.

치매임을 확인하고 약을 먹기 시작한 거는 불과 2년여의 세월이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급속도로 악화되는 치매 증상에 온 가족은 미치고 환장할만한 일들을 많이 경험하며 마음 고생을 해야만 했다. 그러기에 아버지의 죽음은 그렇게 슬프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안타깝고 아쉽고 죄송한 마음은 있었지만 그냥 그렇게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내 앞에 쌓인 눈을 종종 쓸어내주기도 했지만, 적지 않은 시간동안 원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정 떨어지는 대상이 되었고, 치매 후에는 더 했다.

현관 도어락의 비번을 기억할 수가 없게 되고, 점점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고 헷갈려 하는 수준이 되었지만, 나는 그런 과정을 차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고 해야겠다. 때로는 몹시 화를 내기도 하며 모진 말로 상처를 주기도 하였다. 매일 매일 나의 출근 전에 목욕을 시키면서 그런 죄스러운 맘에 대해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혼돈의 시간이었다.

기억을 잃어간다는 것은 그저 단순히 정신적인 부분만이 아니었다. 육체적으로 많은 부분이 잊혀져 갔다. 먹는다는 행위를 잃어 버리고, 배설도 잃어 버리고, 그렇게 숨쉬는 것마저도 잃어 버리게 되었다.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그 어떤 식으로라도 행복한 때에 대한 기억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단 한 번이라도 차분히 앉아서 그런 대화를 나눌 여유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불행히도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와의 대면은 너무나도 불편해서 최소한의 접촉만을 유지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부모님, 즉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고 싶다고 하고, 고향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찾아갈 수는 없었다. 그것은 사촌형들이 저질러 놓은 어이없는 일련의 상황으로 인해서 선산도 없어지고, 묘도 없어지고, 더불어 고향도 없어진거나 다름없는 때문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야말로 딱 한 순간이었다. 지금 당장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여전히 계속 버틸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파국이었다. 서서히 죽음으로 향해가는 것은 확실했지만 그 순간이 바로 그 날이 될 것이라는 상상도 못했다. 아니 어쩌면 예감했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 날 나는 어쩐지 잠을 이루지 못했고, 자정이 넘은 그 시간에 무언가의 끌림에 아버지를 찾았고 죽음이 거기 서 있었다.

나는 딱 한 번 크게 울었다. 슬프지는 않았지만 너무 죄스럽고 미안해서 그렇게 울었다. 좀 더 친절하지 못했던 것을, 좀 더 애틋하지 못했던 것을, 함께 제대로 된 여행을 못했던 것을, 마지막으로 딱 한 번 아버지랑 목욕탕에 가지 못했던 것을,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은 결국 먹지 못했던 것을... 그렇게 장례가 끝난 후 집에 돌아와 침대에 엎드려 눈물을 쏟아내었다. 불쌍했다. 아내는 그런 나에게 "울어요"라고 말해 주었다.

생각해보면 아주 어릴 때에 분명 아버지는 나의 우상이었고, 나는 그런 아버지를 너무 좋아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나는 아버지와 최대한 멀리하려했고 그 간극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유지되었다. 아버지는 분명 나를 참으로 사랑했음을 알고, 종종 나에게 그런 애정을 직접적인 언어로 표현했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의 표현을 싫어했다. 섭섭했겠지만 싫어했다.

그러면서 지금 나는 나의 아들이 나에게서 그런 감정을 느끼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살짝 갖고 있다. 참 이기적이다. 물론 나의 아들은 나보다는 훨씬 더 착해서 그렇지는 않은 것 같지만, 나도 어린 시절에는 매우 착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그런 결말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노인들의 치매에 대하여 깊은 성찰과 경험을 가지고 집필했음을 경험자로써 알겠다. 그의 가족 중에 치매환자가 있었는지, 아니면 치매환자에 대한 많은 취재를 통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우연이겠지만 아버지의 치매 진행 과정에서 우리가 겪었던 일들이 드라마의 디테일과 너무나도 일치가 되어서 놀라웠다. 그러기에 더욱 감정 이입이 되었고, 눈물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연하겠지만 김혜자 선생님의 얼굴에 아버지의 얼굴이 오버랩 되었다. 울컥울컥거림이 계속 올라왔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도 나에게도 찬란했을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 있기에 위로받고 위로받고 위로받았다. 누구의 삶이나 그렇게 가치있다고 헌사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니까...

아빠! 미안해요, 부디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