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2번 by 백건우 ;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듣다

세상의 모든 음악을 다 들을 수는 없다. 심지어는 내가 보관 중인 음반 혹은 음원들도 죽을 때까지 한 번이라도 들을 수가 없는 것들도 제법될 것이다.

자꾸만 듣던 놈들을 듣게 되고, 딱히 보수적인 성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보적이지도 않은 회색분자?!!), 음악에 있어서는 그렇게 보수화되어 간다. 나이먹음=보수화 라는 공식을 이 부분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운명" 이라던가 "신세계" 등으로 시작되는 대중적인(?) 클래식 단계를 넘어서면서 듣게 되는 몇 개의 곡들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떤 때는 피아노곡에 미쳐있다가, 바이올린에 빠져있다가, 첼로, 플루트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또한 교향곡에서 출발하여 협주곡으로 그리고 실내악으로... 어쨌든 이 곡은 말하자면 클래식 관심 3단계 정도에서 만나게 된 것 같다.

협주곡 1번의 처절한 실패 뒤 절치부심하여 내놓은 협주곡 2번은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사실 지금 들어봐도 4개의 협주곡 중에 2번이 가장 귀에 잘 들어오고, 그 다음은 3번이다. 1번과 4번은 다소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느낌이다.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연주하고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 스토코프스키가 협연한 음반을 나름 최고본으로 치는 모양이다. 물론 나쁘지는 않은데, 개인적인 취향은 백건우가 모스크바 라디오 심포니와 협연한 이 연주가 더 마음에 닿는다.

조성진도 그렇고 백건우도 그렇고 졸지에 무슨 국뽕이 된 것 같은데, 뭐 개인적인 선호이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딱히 반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이 곡에 대한 더 나은, 내 마음에 더 드는 음반은 또 나올 것 같다.

사실 이제는 음반 시장이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인 세상이 되었다. 최근의 연주가는 누가 존재하는지 웬만한 관심을 가지지 않고는 알지 못할 정도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여전히 카라얀 패키지가 최고의 음반으로 팔리고 있다고 하니 클래식 음반 시장은 1990년 정도에서 그냥 멈춰서 버린 것 같다.

라흐마니노프의 음반은 너무 카랑카랑해서 조금 불편하다. 작곡가 본인의 한 연주이니 그야말로 정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백건우 연주를 들으면서는 숨쉬기가 편하다. 누가 연주를 더 잘하느냐는 전혀 의미없는 다툼일 것이다. 모두 시대를 풍미하는 연주자들인데 감히 그런 것을 따질 주제는 되지도 못한다. 그저 혼자만의 선호도일뿐이다.

바쁜 시절에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가 참으로 덧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적어도 30분 혹은 한 시간여를 온전히 음악 청취에 투자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고급스러운 휴식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책을 읽거나 가볍운 일을 할 때는 배경음악처럼 틀어 놓는다. 그러나 사실 그런 행위는 음악을 온전히 "듣는다"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귀에 피아노 소리를 들을 기회가 거의 없다시피한 것이 현실이기에 그렇게라도 듣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협주곡2번을 틀어 놓고 책을 읽다보면 점점 음악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게 된다. 독서에 방해가 되는 것이다.

결국 오늘도 그렇게 책 한 줄 읽으려고 펼쳤다가 그림처럼 틀어놓은 음악에 더 빠져 버려서 책을 덮고는 이렇게 몇 줄 글자를 적어본다. 하루가 다 끝났다.